입력시간 : 2008.01.25 01:08 / 수정시간 : 2008.01.25 02:54
- "보통 일주일에 2~3차례씩 이현세 선생님과 만취하도록 술 마셨는데…. 요즘은 만나 뵙기가 좀 그렇네요."
경기도 분당의 율동호수 옆 카페에서 만난 스타 만화가 황미나(47). 길게 땋아 허벅지까지 내려온 머리칼, 삐딱하게 눌러쓴 베레모에 넉넉한 코트까지, 여유로운 풍모는 여전했지만 난감한 기색이 먼저 얼굴을 스쳐간다. 한국 순정만화계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그는 작년 7월부터 '대선배' 이현세의 1980년대 작품 '공포의 외인구단'을 드라마로 쓰고 있다. 올해 중반 방송될 예정. 그는 "원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누가 어떻게 각색을 해도 유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그래도 선생님은 늘 '미나 네가 쓴다니까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용기를 주신다"고 했다.
황미나의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웬만한 남성 팬을 능가한다. "고(故) 이길환 투수(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가 고교 시절 계속된 연투(連投)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먹고 계속 던지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지금도 야구 연습장에서 배트를 휘두르면 날아오는 공을 대부분 맞히기는 해요. 허리가 둔해서 풀 스윙이 안 되는 게 문제죠. 중·고교 시절에는 5년 동안 오빠와 캐치볼을 했죠."
- ▲ 드라마‘공포의 외인구단’작가로 변신한 순정만화가 황미나. 그는“주인공들의 지옥훈련에 남성 독자들이 군대에서 고생한 것을 추억하며 열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 그런 그가 야구만화를 그리지 않았던 이유. 비빌 언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구만화 그리는 사람이 널렸는데, 순정만화가가 야구만화 그리면 누가 보겠느냐?"며 주변에서 적극 만류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의 접어둔 꿈을 조금 늦게 펼쳐 보이는 마당이다.
황미나판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떤 색깔일까? 원작에 대한 '쓴소리'에서 힌트가 보인다. "여성 캐릭터가 너무 소극적이다. 남자 주인공을 멋있게 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 같다"며 "조금 과장하면, 인격이 거의 없어 보이는 정도"라고 했다. "철저하게 남성을 위한 만화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엄지'가 상당히 당찬 여성으로 나올 겁니다. 망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동대문 시장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 가며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하지만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했다. "사람들은 아무리 잘나도 늘 열등감을 갖고 살죠. 그러니까 오혜성, 하국상, 조상구 같은 변방(邊方)의 인물들이 '지옥훈련'을 거쳐 경이적 성취를 이뤄내는 이 만화의 쾌감은 당시 억눌린 사회 분위기 속에 남성들의 로망을 충족시켜 줬던 것 같아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손병호 감독의 말은 정말 명대사 아닌가요?"
황미나는 최근 3년간 만화를 그리지 않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포의 외인구단' 극본까지 맡게 됐다. "제 끼와 능력을 좀 더 확장시켜 보고 싶었어요. 만화가들은 발상 자체가 신선해요. 비주얼과 스토리를 늘 함께 생각한다는 점도 동영상 시대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죠."
- ▲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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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80년 데뷔한 뒤,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화, 만화가에 대한 사회의 푸대접이 안타깝다"며 잠시 본업(本業)을 접어 둔, 또 다른 속내를 드러냈다.
"집안이 워낙 어려워 상고 졸업을 앞두고 쌀값 벌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5살 때부터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에게 지어낸 이야기를 풀어내면, 아줌마 아저씨들까지 모여들었다"고 했다. 순정뿐 아니라 무협, SF, 판타지를 오가며 기발한 상상력을 뿜어냈던 그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었나 보다.
- 드라마화 되는 이현세 원작 '공포의 외인구단' 대본을 집필하고 있는 만화가 황미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율동공원 호숫가에서 만나 만화가와 드라마 작가로써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허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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