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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3 [본문스크랩] 바람의 파이터
*보도자료

2004년, 세상이 기억할 액션이 온다!
바람의 파이터






그는...

거칠 것 없는 폭풍이다

단단한 강철덩어리가 아니라
변화무쌍하고 거대한 물결이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높이 솟구치고 더 세게 부딪혀
더 잘게, 더 투명하게 부서져내리는 파도다

그는 무수히 깨졌다.
무수히 부서졌다.
그러나 깨지고 부서진 그 배만큼 철저히 깨고 부쉈다.

그의 동작에는 일정한 형도 없었다.
바람도 같고 물과도 같았다.
하늘 아래 그를 뛰어넘는 파이터는 없었다...

그의 이름은 최.배.달.


1. 최배달


“최영의란 분이 계셨지. 전 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맞짱을 뜨신 분이야. 그 양반은 황소 뿔도 여러 개 작살내셨다. 이런 식이다. 딱, 아...아...앞에 딱 서. 너 소냐? 나...나...니, 최영의야! 그리고 뿔을 딱 잡어. 그리고 내..내리쳐. X나게 내리치는 거야...X나게. 소뿔이 부러질 때까지…”

코미디계의 국민배우 송강호를 발굴한 영화 <넘버3>에서 그가 가장 힘주어 연기한 대사는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인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의 소개다. 여관방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뜰 날을 기대하는 건달인 영화 속 그에게 ‘최배달’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가장 든든한 우상이었다.

최배달(본명: 최영의)은 1922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했다. 16세에 도일, 야마나시 소년항공학교에 재학하던 1939년 공수도(가라데)에 입문, 1947년 24세에 전후 최초로 열린 전 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를 제패했다. 1948년에는 키요즈미산에서 18개월 동안 수도생활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는데, 폭포수 밑에서 좌선을 하고 야생동물과 싸우고 맨손으로 나무와 바위를 치는 고행 끝에 극진 공수도를 완성했다. 이후 세계를 돌며 중국의 쿵푸, 프랑스의 사바테, 브라질의 카포에라, 발리송 권법, 미국의 프로레슬러, 태국의 킥복서 등과 실전을 벌여 무패행진을 계속해 나갔다. ‘신의 손’이라 불리기 시작한 그는 150연승을 달리던 美 프로레슬러 톰 라이스가 한국계 레슬러 역도산(力道山)을 이기자 대결을 자청, 삼각 점프킥 한방으로 눕혀 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진검(眞劍)을 든 상대와도 맨손으로 대결, 승리한 적도 있다.

초인적인 스피드로 허공에 떠 있는 종이에 구멍을 뚫었으며 맨주먹으로 20cm의 자연석을 격파하고, 한주먹에 맥주병 14개의 목을 날리는 등 도저히 믿기 어려운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꺾기도 했다. 1961년, 극진회를 창립했으며 1959년과 1962년에 시카고 뉴욕 캘리포니아 등지에 분관을 설립, 30개의 기왓장을 박살내는 등 격파술 시범이 전파를 타면서 미국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최배달은 70년대 이소룡 이전 가장 명성을 날린 무도가였다. 스페인 국왕, 요르단 왕실, 영화배우 숀 코넬리 등의 무술 사범을 역임하였으며 전세계 140개국 1200만명 수련인구를 자랑하는 국제가라테연맹의 총수, 극진회관의 관장이 되었다.

세계가 인정한 절대신화의 주인공 최배달. 그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무시 속에서 가슴 속 울분을 수련의 에너지로 삼아 일본을 놀라게 하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승부를 가릴 때마다 두려움에 머리가 한움큼씩 빠지면서도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도전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한 조국은 그를 단지 싸움꾼이라고 치부했으며 소를 때려잡는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만든 극진 가라데가 태권도라며 원조를 운운했으며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로 지목해 멸시를 보내기도 했다. 최배달은 한국국적을 포기, 일본에 귀화했다. 오래 전부터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그가 ‘일본의 위대한 영웅 10걸’ 중 한명으로 뽑히자 극진회를 후원하던 사토 전 일본총리가 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끌어안지 못한 영웅은 배달민족의 뜻이 담긴 최배달, 일본명 오야마 마스터쓰(大山倍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최배달에게 조국은 대한민국, 하나였다. 이에 대해 그는 귀화가 아니라 단순한 일본국적 취득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또한 전세계의 극진가라데 수도인들은 일정한 단수가 되면 유단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 도쿄에 있는 극진회관에 가서 단체합숙과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최배달은 "...극진회관은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람의 파이터>는 우리가 몰랐던 영웅 최배달, 포기를 모르는 한국인의 근성 최배달, 불패신화의 주인공 최배달에 대한 대한 영화다. 평생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던 최배달. 세계를 제패한 거인이자 영웅이지만 동포들의 편견과 무관심 앞에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영웅담을 이야기하려 하려 한다.




2. 극진공수도

맨손의 무술이란 뜻의 ‘공수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타격계 격투술로 흔히 ‘가라테’로 불린다. 꺾기, 조르기, 메치기, 굳히기 등의 혼합이 거의 없는 순수 타격계통 격투술이며 태권도, 쿵푸, 무에타이와 더불어 동양을 대표하는 입식 격투기다. ‘공수도’는 중국 남권의 무술과 일본에 흡수되기 전 오키나와의 류쿠왕국의 토착무술이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오키나와 무사집안 태생의 '기친 후나코시'가 명치시대에 일본 본토에 처음으로 가라데(당시 이름 당수(唐手))를 소개하면서 체계화시켰고, 1929년에 당수와 구분하여 가라테(空手)로 이름이 바뀌면서 일본무도로 내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공수도는 유파가 많은데 가장 최강으로 꼽히고 서구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최배달이 창시한 ‘극진공수도’. 極 은 '극한' 혹은 '정점'을 뜻하며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眞은 '진실' '참됨'을 의미한다.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극진하다'라는 말의 ‘극진’이며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진실의 무도라는 뜻이다. 기존의 ‘공수도’가 시합용으로 변질되어 가격 전에 동작을 멈추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 처음으로 열린 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최배달은 공격을 멈추는 경기규칙에 의문을 품게 된다.

"격투기에서는 1/100초 사이에도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설사 공격을 먼저 받았다 해도 보다 위력강한 공격으로 반격했을 경우 승패는 뒤집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대방 몸 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경기규칙으로 어떻게 강자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태어난 것이 ‘극진공수도’다. 오랜 시간 동안 최배달이 숲속에서 야수와도 같은 수련생활을 하면서 확립한 극진공수도는 낭심공격, 손에 의한 안면공격 등 몇 가지만 금지될 뿐 프로텍터(호구)도 없이 자유롭게 공격이 허용된다. 따라서 대련 중에 턱뼈나 갈비뼈, 빗장뼈가 나가거나 부상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에 신체보호에 무신경하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나 최배달은 "거의 모든 무도가 지나치게 스포츠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극진공수처럼 격투기의 원형 가까이 머물러 있는 무도가 하나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굳은 신념을 밝힌 바 있다.

‘극진공수도’는 나를 수련하여 자신을 이기고 상대를 이기는 것, 최고의 강자가 되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며 죽음을 불사한 채 승부수를 건다. 따라서 ‘다음 싸움’이란 말은 없다.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기상이 살아있는 실전무술, 그것이 바로 ‘극진공수도’다.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의 인생연표


1923년 7월 전북 김제 출생

1932년 4월 소학교 입합, 십팔기의 중국권법수련

1941년 3월 소년항공학교에 입학

1945년 9월 도쿄 에이와 공수도 연구소 창립, 맨손 연구에 정진

1946년 1월 최배달 최초의 입산수련 시작

1947년 9월 전 일본공수도대회 우승

1948-1950년 신공수로 전국의 가라데도장 순례, 격파
(교토-니조 10걸, 나라-극진공수 원조 사카하라
고베-가미소리(면도날) 모리, 나고야-닌자 미와 노부오,
요코하마-관동의 금색 호랑이 가네토라...)

1951년 1월 유도의 달인 니노 이글, 대륙낭인 검객 료마와 대결, 승리
3월 무사시노 벌판에서 40:1로 목숨을 건 결투

1953년 3-11월 시카고 프로레슬링협회 초청으로
전미 32개소에서 데몬스트레이션과 가라데 지도.
전미레슬링 챔피언 등과 목숨을 건 대결을 여러 번 치르다

1954년 1월 하와이에서 역도산과 첫만남, 역도산에게 가라데를 가르치다
3월 하와이에서 붉은 전갈 톰 라이스와 대결, 승리
4-6월 다큐멘터리 <소와 싸운 가라데>를 찍다
47마리의 소 중 4마리 즉사, 나머지는 뿔을 꺾다

1956년 4월 동남아시아 원정, 권법 연구

1957년 6월 유럽 원정.
프랑스에서 사바트의 제왕 보몬과 결투, 승리.
칼잡이 루이와의 결투, 승리
지하레슬링의 마와 무이슈킨과 사투, 승리
9월 태국에서 무에타이 챔피언 블랙 코브라와 대결, 승리
11월 발리에서 카포엘라의 고수 세올로와 대결, 승리

1958년 4월 멕시코시티에서 투우소와 결투, 부상당하다

1959년 7월 미국, 유럽 원정

1961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장 열다

1966년 9월 배우 숀 코넬리 내관

1968년 8월 요르단 왕실 초청으로 왕가에 가라데 지도

1978년 4월 남미 공수권선수권대회 개최

1979년 11월 요르단 왕실로부터 훈장 수상

1984년 1월 브라질 정부로부터 문화공로상 수상

1994년 4월 사망

起/ movie


싸움에서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는 그것으로 끝이다. 죽음이다.
‘다음’ 공격이란 말도 있을 수 없다.
공격이 실패한 사이 치명적인 역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싸움의 승패는 일격필살(一擊必殺),
단 한방에 달려 있다!!


파이터는 단 한방에
인생 전부를 건 사람이다...

세계를 무릎 꿇린 유일한 파이터
세상이 기억할 액션이 온다


1. 최배달 / 맹수와 인류가 모두 무릎 꿇은 신화의 주인공
마침내 만나는 절대액션의 주역

인간이 맹수와 대결해 이길 수 있을까? 권투, 레슬링, 유도, 검도, 가라데, 쿵푸 등 세계의 모든 격투기를 제압한 고수가 있을까? 이 질문의 해답이 된 단 한 사람의 남자. 놀랍게도 그는 한국인이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파이터 최배달. 전 세계 언론과 파이터들이 신처럼 추앙했던 그이지만 아직 우리는 그를 알지 못 한다.

일본인들에게 받은 차별과 멸시에 대한 한풀이를 넘어서서 맨손,맨발로 세계를 무릎꿇린 파이터 최배달. 그러나 그는 천부적인 파이터는 아니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나라 없는 설움 속에 내던져진 가엾은 청년이었고, 죽음을 건 대결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빠질만큼 공포의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무엇이 한 평범한 청년을 세계 최강의 파이터로 다시 태어나게 했는가? 화려한 승리의 영광 이 있기까지 그가 흘린 눈물과 땀 속에 어떤 드라마가 숨어 있는가? 2004년 7월 영화 <바람의 파이터>가 그 질문의 답을 해줄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될 전설의 파이터 최배달. 이제 그를 만나야 한다.

2. 도전/ 승리보다 먼저 무너짐이 있었다.
무너짐보다 먼저 두려움이 있었다.
2004년의 심장을 관통할 뜨거운 도전의 드라마


산 속으로 들어가 문명과 담을 쌓고 눈쌓인 산을 오른다. 나무 기둥에 노끈을 매 정권과 발차기를 연습하고,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한겨울 맨발로 자갈길을 달리기도 한다. 절벽을 야수처럼 달리고 단단한 자연석을 맨손으로 격파한다. 그 과정에서 지쳐 입산수도의 길을 포기하게 될까봐 칼로 한쪽 눈썹씩 민다. 밀었던 눈썹이 자랄 즈음 나머지 한쪽을 밀어 눈썹 때문에라도 스스로 하산하지 못하게 하여 고행 속에 묶어 두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최배달이 스스로의 극한을 넘어서기 위해 감행한 도전들이다.

최강을 꿈꾸어보지 못한 자는 그가 무모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보다 차라리 목숨을 건 싸움의 두려움 속에 자기자신을 내던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의 한계를 다하는 (극진) 수련을 감행하면서...‘이케부쿠로의 오줌싸개’라는 치욕을 당했던 겁많은 소년에서 ‘신의 손’으로 불리는 파이터가 되었던 청년 최배달의 ‘뜨거운 도전’이 벅차게 담길 영화 <바람의 파이터>. 희망이 귀해진 이 시대 관객들의 심장을 가장 강렬하게 고동치게 할 영화가 될 것이다.



3. Action/ 근육의 박동과 체온의 열기, 공포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진짜 파이트 액션


<올드 보이>의 무술감독을 맡아 영화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액션스쿨 대표 양길영 감독, 극진공수도의 김경훈 본부장이 팀으로 액션의 스타일과 파워를 책임지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 응시자 각종 무술 총 합계 17000단이라는 천문학적 기록을 남겼던 전국 오디션에서 선정된 출연진과 정두홍 무술감독의 열연 역시 영화에 든든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액션은 스포츠가 아니다!‘, ‘진짜 목숨을 걸어야만 진정한 파이트(FIGHT)다!‘ 라는 최배달의 명제에서 출발해 기존 영화에서 보여졌던 그림으로서의 액션을 지양하고 고수들이 목숨을 걸고 마주하는 긴장감이 살아있는 액션, 공격의 강렬함 뿐 아니라 맞는 이의 충격까지 고스란히 전달될, 결정타의 쾌감이 함께하는 일명 ’한 방 액션‘을 선보일 예정. 세계를 재패한 ’최배달‘과 ’극진공수도‘의 명성 그대로 리얼 액션의 신천지가 한국 영화계에 펼쳐진다!



4. HIGH- LIGHT/ 도바아라시!!

<바람의 파이터> 제작진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액션의 하이라이트는 도바아라시 씬. 도바아라시는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도장들을 깨나가는 일본무예의 전통으로, 중국무협영화에서 무림고수가 도장들을 찾아다니며 대련을 해 현판을 떼어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도바아라시는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7세기 에도시대 초기, 쌍칼을 쥐고 전국을 유랑하였다) 이후 맥이 끊겼으나 20세기 들어 이를 다시 되살린 사람이 바로 극진공수도의 총수 최배달이었다.

최배달이 입산수도를 통해 확립시킨 극진공수도의 빛나는 기술이 총집합되는 이 씬은 <바람의 파이터> 액션의 핵이 될 중요한 장면. 스턴트맨 없이 영화의 최배달의 액션을 직접 재현해야 할 양동근 역시 이 장면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와이어, 카메라 워킹 등으로 포장된 액션이 아닌 정통 아날로그 스타일로 재현될 도바아라시 씬은 일본 현지 스텝들의 완벽한 고증 속에 2004년 여름의 스크린과 객석을 목숨을 건 대결의 긴장감으로 압도할 것이다.

5. 원작/ 다모 신드롬의 진원지 만화가 방학기!
그의 작품 <바람의 파이터>가 스크린을 만나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원작은 방학기의 동명만화다. ‘바리데기’, ‘감격시대’, ‘바람의 아들’, ‘임꺽정’, ‘애사당 홍도’ 등 토속적인 소재와 특유의 역사의식이 결합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만화가 방학기. 미술전공자답게 탄탄한 데셍 실력과 실감나는 동작묘사, 철저한 고증과 연구가 뒷받침된 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지난 해 다모폐인의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다모] 역시 그의 작품이 원작.

1989년부터 92년까지 연재되었던 ‘바람의 파이터’ 역시 당시 게재된 신문의 판매부수를 100만 부 이상 증가시킨 전설을 남기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6. KOREA- JAPAN/ 월드컵, 보아, 그리고 <바람의 파이터>
두 나라가 하나된 3번째 프로젝트

검에서는 미야모토 무사시, 공수도(가라데)는 최배달이라는 개념이 뿌리 깊은 일본을 비롯 세계 전역에서 ‘최배달’이라는 이름은 ‘파이트’ 역사의 ‘신’과 마찬가지. 청년 최배달의 일본에서의 행적에 초점을 둔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일본 로케촬영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일본 정상급 스타 가토 마사야( 2002년 일본영화비평대상 남우주연상 수상, <크라잉 프리맨>, <고질라> 등 출연), 히라야마 아야 (<워터 보이즈>, <행복한 가족계획> ) 등의 호화 캐스팅, 일본 국보급 문화재에서의 로케이션 등 <바람의 파이터>의 일본 촬영부분이 하나의 독립된 흥행영화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 <바람의 파이터>는 한국에서 개봉된 이후 일본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承/ STORY

대결을 할 때면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빠졌다.
너무나 두려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할 만큼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게 있다.
공포의 단계를 넘어서면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그 다음은 내가 오늘 죽더라도 죽을 가치는 하자고 이를 악문다.

두려움이 무서워서,
도저히 피할 수 없어서,
차라리 시험대 위에 나를 내던졌지만
결국 나를 지켜준 건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일본 전체를 무릎꿇린 단 한 사람의 한국인 최배달!
그가 주먹을 쥔 순간, 실화는 신화가 되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암흑이던 때 세상은 세 부류였다
일본인, 일본이 기르는 개, 개만도 못한 죠센징
한국인이 일본인을 위한 종처럼 여겨지던 일제시대, 소년 최배달은 머슴 범수를 통해 택견을 배우며 강한 파이터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연류된 범수가 자취를 감추고 스승을 잃은 배달은 비행사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항공학교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상상을 넘어선 차별 뿐인데,,,

시대를 딛고 세상의 심장을 향해..
그의 도전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신화가 된다
죠센징이라는 차별에 대한 분노로 교관을 때려 눕히는 배달. 그러나 맨 손의 그에게 사무라이의 후예인 가토대위가 살기어린 진검을 겨누고 배달은 칼날에 등을 보인 채 도주하고 만다. 방황하던 그에게 어린시절 정신적 스승 범수와의 기적 같은 만남은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전환점이 되어주지만 야쿠자에 의해 살해당한 그의 주검 앞에, 자신의 무능앞에, 다시한번 부서지고 만다. 힘없는 정의도 무능이요.. 정의 없는 힘도 무능임을 깨달은 그는 입산수련을 결심한다. 문명과 담을 쌓은 혹독한 수련! 처절하리만큼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며 그는 시대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나는 내가 산을 내려가게 될까봐 두려웠어
덜 고통스럽고 덜 외로운 생활을 그리워하다가
스스로 세웠던 목표를 포기할까봐 두려웠지

그래서 눈썹을 밀었던거야
한쪽 눈썹이 다 자라면 나머지 한쪽을 밀고
그 나머지 한쪽이 다시 자라면
다른 한쪽 눈썹을 밀었어
창피해서라도 산에서 떠날 수 없을 거 아냐

나는 나를 완전히 고립시켰지
나 자신조차도 편이 되어주지 않았으니까...

“살고자 했을 때 죽었고 죽고자 했을 때 살았다
내 숨이 멎는 순간 이 고독한 싸움도 끝날 것이다!“

최배달(양동근 분)


파이터의 눈빛을 타고난 조선 청년. 상대방의 공격을 미리 읽어내는 뛰어난 판단력과 부서지긴 해도 꺾이지 않는 지독한 근성, 그리고 적시적소에 치고 들어가는 완벽한 일격필살의 기술을 보유한 최고의 테크니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면을 지닌 반면 두려움에 스스로 정복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면도 숨겨져 있다. 한때 비행사를 꿈꾸었으나 일본인들의 차별을 겪은 후 파이터의 포부를 키워 나간다. 혹독한 수련을 거치면서 무술의 기본이 이기는 것에 있음을 깨닫고 이기는 기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일본 전국의 도장을 돌며 고수들과 대련을 하는 도바아라시를 통해 진정한 파이터로 거듭나게 된다.


한국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연기파배우 양동근.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의 흑인 혼혈아 창국으로 베를린(?) 영화제에 공식초청되며 차세대 스크린을 이끌어갈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았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시한부인생을 사는 소매치기 고복수 역으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2000년대의 거침없는 젊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2003년 영화 <와일드 카드>에선 하드 보일드의 극치인 강력계 형사를 온 몸으로 열연해 박스 오피스 1위를 정복하며 (?) 전국 2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 상반기 흥행순위 *위)그리고 이제 그가 <바람의 파이터>에선 세계를 무릎꿇린 파이터 최배달로 태어난다.

인터뷰 때마다 예, 아니오의 간단한 대답 때문에 인터뷰어를 진땀흘리게 하는 과묵한(?) 인터뷰이 양동근. 한국 배우중 가장 솔직한 배우로 대중들에게 꼽히는 그인만큼 주연배우 교체로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던 제작진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출연의사를 밝혔다. 쉽지 않은 수련과 대결장면을 소화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액션스타가 꿈이었다"며 힘든 촬영을 자진했다.

액션스쿨에서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몸만들기와 훈련은 쉽지 않았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난이도 수련은 그렇다쳐도 한겨울에 상의를 벗은 상태에서 맨발로 눈 위를 달리는 입산수도 장면 촬영이나 일본의 가라데 도장에서 찍은 도바아라시 씬의 고난이도 대련씬은 악발이 양동근으로서도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하는 극한의 미션이었다.

그러나 양동근은 변하고 있다. 눈빛은 촬영을 더해갈수록 사나워졌다. 카리스마는 더욱 거세졌고, 몸을 아끼지 않는 바람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게 되자 오히려 감독과 스텝이 나서서 말릴 판이었다. 완성도 있는 액션씬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양동근의 의지 만으로도 <바람의 파이터>는 빛나는 영화다. 또한 <바람의 파이터>로 한국영화계는 우리 나라 최초의 대중성을 갖춘 정통 액션배우 한명을 얻게 될 것이다.

연기에 한쪽 발만 담그는 것이 아닌 전신을 푹 빠뜨려 버리는 배우. 현장의 스텝들이 전율을 느낄만큼 절절한 감정연기를 해내는 배우.

2004년 바람의 파이터
2004년 마지막 늑대
2003년 와일드카드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
2001년 수취인불명
2000년 해변으로 가다
1999년 댄스댄스
1999년 화이트 발렌타인
1998년 짱

“싸움에서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지.
이케부쿠로의 오줌싸개가 감히 사무라이의 정의를 언급하다니!”


가토/ 가토 마사야

그 누구에게도 패배해본 적이 없는 일본 최고의 가라데 고수이자 일본 최고의 검술 달인. 살기어린 눈빛과 무서운 집념의 냉혈한으로 사무라이정신과 일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일왕의 항복과 함께 할복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 최대 우익단체 국수회의 새로운 지부장이 된다. 극도로 조선인을 경멸하며, 배달과는 항공학교에서부터의 악연을 이어간다.

<크라잉 프리맨>으로 헐리웃에도 이미 이름을 알린 배우. 실제로 상당한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어 자신의 보디가드인 료마 역의 박성민에게 진검을 잡아보는 자세를 챙길만큼 검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양동근과 대결씬을 촬영하기 전 몇 시간에 걸쳐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무늬만 연습인 실전대결을 벌여 화제가 되었다. 양동근이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를 정도. 거듭된 그날의 촬영 테이크를 마친 뒤 양동근의 연기력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에서 자신은 ‘최민수와 동갑이다.’를 강조하며 한국 배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강조하기도. 야식으로 먹은 한국의 김밥 맛에 반했다는 그는 스텝간의 끈끈한 정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국 스텝들로부터 들은 한국 욕의 살벌함에 감탄하기도.

수상경력 : 2002년도 제12회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주연남우상
제12회 일본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
제13회 구마모토 영화제 영시네마상
92년 제5회 일간스포츠 영화대상 이시하라 유지로 신인상.
92년 에라르돌 신인상 (일본영화 텔레비전 프로듀서 협회)

[영화]

2004년 바람의 파이터
2003년 극도공포대장 우두
2000년 브라더
1999년 노바디
1998년 고질라
1995년 크라잉 프리맨

“당신은 나무같아요. 바람이 불 때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깊게 뿌리내리는...”

요우코/ 히라야마 아야

맑은 영혼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게이샤. 미군병사로부터 겁탈당할 위기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배달을 전설의 의적 모우코라고 믿게 되면서 게이샤 신분으로 조선인청년 배달과 슬픈 사랑을 시작한다.
<워터보이즈>의 여주인공으로 한국에 얼굴을 알린 히라야마 아야. 1998년 연예계에 입문한 열 아홉의 어린 여배우지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어 기쁘다. 이 작품을 통해 여배우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싶다.’는 성숙한 소감을 말했다.
데뷔 : 호리프로 탤런트 스카우트 캐러번 제23회 그랑프리 (1998)
2004년 바람의 파이터
2003년 러버즈 키스
2001년 워터 보이즈
2000년 행복한 가족계획

“내가 널 지킬 수는 없겠지만 이건 약속할께.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네 옆에 있을거야.“

춘배/ 정태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을 남다른 언변과 처세술로 헤쳐나가는 청년. 야쿠자까지 속여먹는 잔재주를 자랑하나 비굴할 때와 당당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하고 현실적인 청년. 밀항한 배달을 속이려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은 후 배달과 친구가 되어 운명을 함께 한다.

아역배우로 출발, 어느새 연기경력 17년이 된 나이가 무색한 베테랑 연기자. 양동근과는 형, 동생할만큼 가까운 사이. 카메라를 보고 자신이 알아서 움직여 그 앵글을 맞출만큼 고수다. 양동근과 함께 양윤호 감독이 따로 연기지도를 하지 않는 유이(2)한 배우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다.


“도련님. 당신의 이름이 배달인 것은 틀림없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범수/ 정두홍

배달의 집 머슴 출신으로 공격의 순간 세찬 바람보다 몰아치는 후려차기가 특기인 택견의 고수다. 어린 배달에게 택견을 가르치며 무예에 눈을 뜨게 해준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장통에서 방황하는 배달에게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를 건네며 세계 최강자의 포부를 심어준다.

한국의 대표 무술감독. <피도 눈물도 없이>로 배우로서도 이미 인상적 첫발을 뗀 지 오래다.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홑겹의 한복만을 입고 연기했으나 강도 높은 액션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는 전설을 남겼다. 오리털 파카를 모두 두르고 있는 가운데 홑겹의 한복만 입은 그가 안쓰러워 스텝이 담요를 들고 달려가자 괜찮다며 발차기 몇 번에 추위를 날려버렸다는 영화인의 탈을 쓴 액션인.

“네 주먹이 아무리 강하다해도 쥐는 순간 내 칼에 동강이 난다!”

료마/ 박성민

검귀라 불릴만큼 정밀한 검술의 대가로 검을 빼는 순간 상대를 베어버리는 필살의 발도술로 유명하다. 가토의 수족으로 가토의 인격과 정신을 그대로 닮아 있다. 가토 이상으로 조선인에 대한 증오심이 깊으며 배달을 멸시한다. 배달의 인생에서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다.

이 영화를 위해 3년이나 기다린 ‘바람의 파이터’의 히든 카드. 실제 검도선수출신으로 현역 검도장 사범이기도 하다. 대한 택견 4단이며 2001년 전국 택견경연대회에서 서울대표로 출전 우승한 남다른 경력의 소유자. 아침에 일어나 얼굴이 너무 많이 부었다며 촬영장 인근을 마라톤할만큼 열성도 남다르다.


“기다릴 줄 모르는 분노는 패배를 낳는다!”
덕구

곡마단에서 칼잡이로 일하는 범수의 제자 중 한명으로 곧은 발질로 내지르는 무릎치기, 손모서리와 팔꿈치를 이용한 손기술이 일품. 말없이 자기 할일을 하는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일본인에 대한 울분을 조용히 삭히고 범수와 함께 입지가 열악한 조선인들을 위해 학교세우기에 힘쓴다. 그러나 범수가 야쿠자에게 희생당하자 살기에 차 복수의 칼날을 뽑는다.


“우리를 이기는 자가 일본 최고다!”

일본 최고의 명인단 니조 십걸

교토의 니조 도장은 송도관의 원류임을 자부하는 도장으로 기라성 같은 열 명의 고수로 유명하다. 니조 십걸은 그들을 칭한다.


“비린내나는 녀석의 버릇을 고쳐 주겠다!”

극진공수의 적자 사카하라

나라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인물로 극진공수의 맥을 스스로 이어받았다고 말하며 자부심을 자주 드러내는 인물. 두 손가락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를 뚫을 정도로 손가락의 힘이 남다르다. 두 손가락으로 갈비뼈 찌르기가 그의 필살기.

“싸우다 죽어도 불평하지 마라!”

삿보로의 면도날 모리

삿보로의 가마소리(면도날)이라 불리는 인물. 면도날로 저며내는 듯한 섬세한 테크닉과 실점의 포를 뜨고 각을 자르는 듯한 고도로 정제된 공격의 소유자.


“즐겨둬라! 그것이 너의 사망유희가 될 테니까!”

나고야의 닌자 미와

나고야의 닌자로 불리는 인물로 닌자집안 출신. 매우 잔인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언제나 검은 도복을 입는다. 상대의 약점을 천재적으로 잘 알아보며 적의 다친 부분을 잔인하게 집중 재공격하는 것이 특기.

結/ DIRECTOR

강한 것을 동경하는 자는 그와 만나게 된다!!
목숨걸고 세상과 맞장뜬 사나이 최배달


조오련이 더 빠른지, 물개가 더 빠른지를 두고 싸우는 <친구>의 한 장면처럼 나 역시 학창시절에 황당하면서도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비교하기를 좋아했다. 우리 나라를 한때 주름잡았던 주먹들 가운데 누가 가장 싸움을 잘 하는가를 두고 친구들과 쓸데없는 말다툼을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시라소니 이성순이 싸움을 더 잘 했다고 하면 한쪽에선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등장하고, 씨름꾼 출신 이정재가 나오면 막강의 발차기로 유명했던 학생주먹의 원조 홍영철, 명동황제 이화룡도 반드시 언급되었다. 때로는, 살았던 시대가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전공영역도 전혀 다른 인물들을 둘씩 묶어 머리 속 사각의 링에 몰아넣고는 피터지는 이종격투기를 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박치기왕 김일과 김두한, 역도산과 시라소니 이런 식으로 말이다. 100m 달리기처럼 싸움 잘 하는 순서대로 등수가 매겨지면 좋으련만 언제나 왈가왈부 논쟁만 벌이다 목소리 큰 녀석이 이기던 시절이었다.

최배달 역시 그 신화적 면모로 따지자면 우리들 사이에서 벌써 영웅으로 등극했어야 옳다. 황소뿔을 맨손으로 뽑고 일본 무도인과 100대 1로 싸워 이겼으며, 세계 유수의 레슬러와 무술하는 사람들을 맨손 맨발로 쓰러뜨렸다는 ‘~그랬다더라’ 신화 속에서 그 역시 훌륭한 주인공이 되었음직하다. 그런데 김일과 역도산이 프로레슬링이라는 글로벌장르 덕에 민족의 영웅으로 등장한 반면 최배달은 가라데의 '왜색'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논외로 밀어두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그의 자서전을 통해 최배달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후 나는 수컷 특유의 ‘강한 것에 대한 동경’을 다시 강렬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민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영웅에 대해 동정이 일면서 무작정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이기지 못해서 안달이었을까? 그렇게 이기면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세상 그 누구에게도 패배한 적 없지만 스스로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정복당한 적이 없었을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람의 파이터>는 이 오랜 질문들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나의 결론인 셈이다.

- <바람의 파이터> 감독 양윤호 -

<바람의 파이터>는 그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다. 90년대 후반 데뷔 감독으로서 작품마다 새로운 도전 속에 멈춤없이 작품을 발표하는 매우 드문 사례를 세워가고 있다. 대학시절 발표한 단편영화로 한국 영화계의 단편 영화상들을 석권했고 데뷔작으로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그의 가장 최근작인 <리베라 메>는 한국 영화의 기라성같은 배우들과 스텝들을 총 망라하며 한국 영화에 ‘불’이라는 소재영역을 넓힌 흥행과 평단 모두에게 갈채를 받은 영화였다.

양윤호 감독은 스텝들이 현장세팅을 위해 벽돌을 나를 때 벽돌 예닐곱 개씩 땀 뻘뻘 흘려가며 함께 나르고, 얇은 옷으로 추워하는 고령의 배우에게 자신의 잠바를 벗어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아역 배우에게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가며 대사와 느낌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자상한 감독. 현장의 스텝들로부터 카리스마와 인간성을 겸비한 놀라운 감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래서 양윤호 감독의 현장에는 늘 그와 오래 호흡을 맞춘 스텝들이 많고 남다른 신뢰와 믿음의 공기가 가득하다. 스텝 모두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 탓에 ‘참여 촬영’의 별명을 얻기도.

양윤호 감독 프로필

2004년 바람의 파이터
2000년 리베라 메 (Libera Me)
1999년 화이트 발렌타인 (White Valentine)
1998년 짱 (Best, The)
1997년 미스터 콘돔 (Mr. Condom)
1996년 유리
1992년 단편영화 [가변차선]-신영 영화제, 금관 영화제, 부산 동백 영화제 대상

PRODUCTION COMPANY

(주)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주)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 전호진)는 지난 2000년 7월에 설립된 이래 외화 수입은 물론 한국영화 제작 및 제작지원과 전국 자체 유통망을 통한 홈비디오, DVD 출시 등 영화산업 전 분야에 걸쳐 선도적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회사입니다.

국내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필름지, 코리아픽쳐스, 아이픽쳐스 및 LG전자 등 한국영화 제작 및 외화 수입과 배급, 비디오 유통 등과 같은 영상사업 전분야에 걸친 전략적 업무제휴를 통해 그동안<두사부일체><색즉시공><오아시스><가문의 영광><조폭 마누라2><낭만자객> 등 수많은 한국영화의 제작지원을 해왔던 (주)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는 2004년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사로서의 입지를 새로이 다지게 될 것이며 이 외에도 다수의 한국 영화 제작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CREDIT
CAST
최배달 양동근
요우코 히라야마 아야
가토 가토 마사야
춘배 정태우
범수 정두홍
료마 박성민
야쿠자두목 최지웅
세츠 마유
료마부인 고쿠부 사치코
도모야 후마 코사카
가토아버지 아키오 와키나가
사따니 이한솔
미와 이한갈
쌍칼 성준용
STAFF
제작사 _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제공 _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청어람
마끼프로덕션
튜브 엔터테인먼트
MVP창업투자
OCN
SBSi
공동제작 _ 양윤호필름
배급 _ 청어람
제작 _ 전호진
기획 _ 양윤호
각본 _ 양윤호
감독 _ 양윤호
프로듀서 _ 정용일
촬영 _ 신옥현
조명 _ 지길수
미술 _ 강승용
동시녹음 _ 이지수
의상/분장 _ 전홍주
소품 _ 이태우
무술 _ 양길영/이홍표
세트 제작 _ 아트서비스
편집 _ 박순덕
CG _ 문병용
특수효과 _ 데몰리션
음악 _ 최만식
스틸 _ 김종선
메이킹 _ 미디어&메이크
예고편 _ 믹스필름
조감독 _ 이상기
연출부 _ 성종훈/김형주/오태혁
스크립터 _ 이경원
제작실장 _ 김원범
제작부장 _ 김용철
제작부 _ 강진희/박미아/김동영/김정곤
제작관리실장 _ 김문환
관리회계팀장 _ 이소희
일본로케진행 _ 이창석/강민하
마케팅책임 _ 이훈
국내마케팅 _ 강혁출/장유정(무비&아이)
온라인마케팅 _ 원스톤
해외마케팅 _ 박이범/이정은
카피라이터 _ 윤수정
포스터사진 _ 권영호
광고디자인 _ 자몽

Posted by 포노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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