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ㅣ이명구 배병철기자] 한국에서는 소리소문 없이 하지만 일본에서는 화려하게 한류스타로 떠오른 연기자가 있다. 드라마 '2009 외인구단'에서 마동탁으로 열연한 배우 박성민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팬사인회가 개최되고 그를 응원하는 팬카페도 여럿 생겨났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존재지?'. 무심코 이렇게 이야기하면 16년차 배우로 살아가는 박성민은 슬플 수밖에 없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백발 애꾸눈 '사량'으로 서서히 존재감을 알린 인물이 바로 박성민이다. 그리고 '2009 외인구단'의 일본판인 '스트라이크 러브'(22부작)를 통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본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스트라이크 러브'는 한국 방송 당시 조기종영이라는 참담함을 맛봤다. 하지만 일본 방영을 위해 재편집과 추가촬영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됐다. 실제로 '스트라이크 러브'에는 일본에서 최고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걸그룹 'SKE48'이 마동탁을 좋아하는 소녀팬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또한 일본야구 전설의 4번타자 히로사와 가츠미가 촬영에 동참하는 등 숱한 화제를 낳았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반응이 더 좋으니까 기분은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왕이면 국내에서 더 잘됐으면 했는데…그나마 일본에서라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스킨십 굴욕 "유명배우 ○○○, 키스신 빼주세요"

박성민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료마) '7급 공무원'(삼성맨) 등을 떠올려 볼만하다. 데뷔 16년 차에, 15개 작품을 찍었으니 연기자 내공이 생각보다 깊다. "안성기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그 분이 1년에 1작품 밖에 안한대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따라하고 있어요.(웃음) 원래 작품이 끝나면 한 동안 잠수타는 편이고요."

'무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 배우들이 그렇듯 박성민 역시 연기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굴욕들을 수차례 겪었다. 이른바 '스킨십 굴욕'은 가슴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전해 들은 이야기라 진위를 알 순 없지만 유명 여배우들과 키스신이나 포옹신이 잡히면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해요. 상대 배우가 반대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하더군요. 하하"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입가엔 여전히 씁쓸함이 묻어났다.

'태왕사신기' 촬영 때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일도 있었다. 최고의 한류스타이자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배용준에게 부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대본대로 액션장면의 합을 맞추려 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에 돌입한 뒤 순간적으로 박성민의 칼이 배용준의 손가락을 치고 말았다. 진검이 아니었음에도 연기에 몰입했던 탓인지 배용준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미안했죠. 동갑내기 연기자 동료이기도 하지만 저랑은 비교도 안될 국보급 스타를 다치게 한거니까요. 차라리 내가 배용준의 칼에 다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당시 일본팬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제 오히려 제가 한류스타라는 과분한 이야기까지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색다른 추억 "공손한 태도, 日 연예인도 바꿨어요"

일본에서 활동이 많다보니 일본팬들과의 추억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박성민과 대화를 하기 위해 직접 한국어를 배운 열성팬도 이미 한두명이 아니다. 박성민이 공연하는 연극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 팬들도 있었다. "진짜 고마운 팬들이 많아요.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에서부터 공연장까지 직접 찾아와 응원해주는 팬까지.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예요."

박성민이 일본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남다른 공손함' 때문이다. 팬들을 보면 먼저 깍듯하게 인사하고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챙긴다. 일본 팬들에게는 연예인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데 그 틀을 박성민이 깬 셈이다. "처음에는 팬들과 인사하고 악수하고 사진찍는 제 모습이 신기했나봐요. 근데 나중에는 주변 연예인들도 제 행동을 따라하더군요. 얘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다고 하더라고요."

박성민은 일본팬들의 환대에 보답하려고 한국어 관련 책을 출판할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팬들이 한국어를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 계획은 잠시 미뤄뒀다. "너무 의욕이 앞섰다고나 할까요. 제가 일본어를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요. 그런 뒤에 팬들만을 위한 한국어 책을 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최고의 작품 "벚꽃동산, 11월 러시아서도 공연 예정"

박성민은 자신이 출연한 최고의 작품으로 지난 5월 공연한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꼽았다. 현역 최고의 희곡작가로 추앙받는 안톤 체홉과, 황금 마스크상 수상에 빛나는 리얼리즘 연극의 최고봉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와 무대 미술가 에밀 카펠류쉬가 힘을 뭉친 작품이다. "한러수교 20주년 기념으로 준비된 공연인데, 당시 수많은 배우들이 15일 동안 오디션을 봤어요. 그때 제가 운 좋게 합류하게 됐어요."

그리고리와의 기억도 강렬한 편. 당시 오디션을 보던 그리고리는 참가자의 프로필을 모두 덮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로만 평가하겠다는 의도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오디션이었어요. 음악에 맞춰 움직여보라, 그때 감정을 표현해보라 등의 요구를 하더군요. 해머로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오디션을 보러 오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그리고리는 박성민을 매우 특별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그리고리는 박성민에 대해 "편안하게 연기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고 자기의 매력을 발산할 줄 아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나중에 통역가에게 그 말을 전해들었어요. 그때 얼마나 힘이 샘솟던지…(웃음) 평생 그 말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박성민은 오는 11월 러시아로 건너간다. '벚꽃동산' 한국 공연이 성공리에 끝나면서 러시아에서 공식 초청을 받았다. 5월 공연과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 공연팀과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11월 공연을 마무리 해놓고 다음 작품을 준비할 생각이에요. 차기작은 아직 고르지 않은 상태인데, 최대한 빨리 선택해 팬들께 인사드리고 싶네요. 참 새로운 기회를 준 일본팬들을 위해 홈페이지도 새롭게 바꿔볼 계획이예요. 아직은 번역기를 사용해 글을 올리는 수준이지만 제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이호준기자>
Posted by 포노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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